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My Story/Daily Life

거지와 부자

잎푸른 2005. 4. 4. 23:27
 10시가 넘은 시각.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. 노약자석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니 부랑자로 보이는 아저씨가 일어납니다. 헝클어진 머리, 지저분한 수염, 거뭇거뭇하게 때가 탄 외투에, 오른쪽 눈 위엔 어딘가에서 다쳤는지 밴드를 붙이고 있습니다.

 까맣게 튼 거친 손을 내밀며 백원짜리 있으면 달라고 구걸을 하기 시작합니다.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거나 언짢은 듯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무시합니다. 저 역시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돈이 없다고 말했습니다. 한칸을 도는동안 몇백원이 모였을까. 그는 옆칸으로 넘어갔습니다.

 다음 역에서 출입문을 통해 다시 이쪽 칸으로 들어옵니다. 옆 칸에서 내린 다음 걸어서 이쪽으로 들어온 모양입니다. 그리고는 아까전 그가 일어섰던 노약자석 맞은편 구석에 앉아 옆사람에게 말을 걸며 중얼거립니다. 옆에서 졸고 있던 아저씨는 듣는 척도 하지 않습니다.

 잠시 후 이번에는 한 할아버지가 들어옵니다. 머리에는 옛날 서당 훈장들이나 쓰던것으로 보이는 갓을 쓴 채 한손에는 폐품 종이를 담은 봉지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종이컵으로 구걸을 하며 구부정한 걸음걸이를 옮깁니다.

 그 할아버지가 다음 칸으로 넘어갈 무렵이었습니다. 아까 그 부랑자 아저씨 앞을 지날 때 그 아저씨는 자신의 손에 있던 동전들을 모두 할아버지의 종이컵에 넣어줍니다. 짤그락 동전 소리가 나자 할아버지는 목례를 하며 다음 칸으로 들어갑니다.

 그가 할아버지에게 동전을 준 순간 감탄을 했습니다. 그 거지처럼 보이는 아저씨는 마음만은 부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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